BRAND STORY

01

아부가르시아,
정밀 기계 제조업체에서
낚시도구 제조 업체로

칼 아우구스트 보스트롬.

아부 가르시아의 역사는 이 하나의 시계 장인이
회사를 일으킨 것으로 시작됩니다. 남쪽 스웨덴 크리스티안
스타드에서 태어난 칼은 시계 장인으로 기술을 배우고
곧 아부 가르시아 발상지인 스방스타로 옮겨 회중 시계
제작소에 근무하게됩니다.

ABU사는 “RECORD”라는
이름의 택시 미터를 다루고, ABU사는
크게 도약합니다.

그에게는 4명의 자녀가 있으며, 그 중 한명인 요테는 14살 때
아버지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일하게 됩니다. 2년 후, 칼은
회사를 한발 더 도약시킵니다. 오래된 교회를 매입하여
공장으로 보수하여 현재 아부 가르시아의 원점이 되었습니다.

ABU사는 당시 회사로부터 물려받은 회중 시계와 전화
도수계를 제조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RECORD"라는
이름의 택시 미터를 다루고, ABU사는 크게 도약합니다.
그러던 ABU사에 먹구름을 던진 것이 제 2 차 세계 대전. 주력
제품이었던 택시 미터의 수요는 순식간에 사라졌던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경영을 물려받은 요테는 택시 미터를 대체 할
새로운 제품으로 낚시 도구에 눈을 돌렸습니다.

택시 미터와 같은 “RECORD”라고
이름 붙여진 최초의 릴은 모두 수작업으로
1기종 당 25개씩 만들어졌습니다. 

요테는 그것을 가방에 포장하여 전국의 낚시 도구
판매 도매상을 방문했습니다.

처음 방문한 것은 베일 하우스 상회. 
여기에서는 "Pebeco"브랜드의 릴을 3,000 대의
대량 주문을 받는 첫 수주에 성공했습니다. 
다음 방문한 대형 상회에서 "RECORD"
릴 스웨덴 국내 총판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성공 궤도를 타고 ABU사는
릴 메이커로서의 첫 걸음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02

RECORD 부터
AMBASSADEUR까지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51년 ABU
스웨덴 왕실 납품의 영예를 얻게 됩니다.

이때부터 ABU사의 제품은 상징 마크로서 스웨덴 국왕의 휘장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ABU의 품질이 국가에 인정 된 순간입니다. 크레스트 마크로 불리는 이 휘장은 지금도
  아부 가르시아의 상징으로 엠버서더 릴 등에 붙여져 있습니다.
 
  1000번으로 시작된 ABU릴은 spool 프리클러치와 자동 원심력 브레이크를 탑재한
  "스포츠 2100“ 을 출시, 양축에 베어링을 채용하여 미세한 조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메카니컬 브레이크를 탑재한 '플라이어 3000‘ 등으로 계속 그 모습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1952 년, 획기적인 베이트 캐스팅 릴 'RECORD 엠버서더 5000’이 발표됩니다.
  대사(AMBASSADEUR)라고 이름 붙여진 이 베이트 캐스팅 릴은 컬러풀한 사이드 플레이트에
  원심력 브레이크와 스타휠 드랙시스템 등 당시의 최신 기능을 탑재하였고, 1954년
  시카고에서 열린 AFTMA Show에 해외기업으로 유일하게 참가하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RECORD 엠버서더 5000은 현재의 모든 베이트 캐스팅 릴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베이트 릴의 대부분은 이 명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후 ABU사는 1979년에 미국의 가르시아사를 인수했습니다. 1984년에 ‘아부 가르시아’로
  사명을 변경하여 명실상부한 세계를 석권하는 낚시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03

아부, 그리고 가르시아
그리고 한국

아부 가르시아는 한국에서도
그 존재감을 더해갑니다. 

바다용 베이트 릴의 초석이 된 ‘레보 인쇼어’를 비롯하여
획기적인 색상과 디자인으로 시장에서 인정받은 ‘오렌지맥스‘
살아있는 전설이 된 바다낚싯대 ‘솔티파이터’ 시리즈와 같은
한발 앞서 시대를 선도하는 제품력을 기반으로하여
한국의 낚시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부 가르시아는 풍부한 역사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대를 급변하는 시장을 리드하는 진정한 가치를 지닌 제품을
여러분들께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